눈 내리는 날에 - 나종영
내 마음 빈속에는
슬픔의 항아리가 비어 있어서
나는 거기에 한 잔 술을 붓는다
술만큼 착한 놈이 없다고
늦은 밤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 손을 꼭 잡고
나는 지긋이 취하고 싶어진다
이 세상에 아픔 없는 이별은 없는 거야
속삭이며 송이눈이 내리고
연인의 포옹처럼 뜨겁게 목젖을 감싸안고 넘어가는
소주 한 잔에 내 슬픔의 항아리는
유리창가에 모재비를 치는 눈송이 마냥 기분이 좋다
떡쌀 같은 흰눈을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종종걸음질치는
새벽 도시의 뒷골목, 묵묵히
송송 김치전을 부치는 주모도 다정스럽고
입술담배 연기를 내뿜는 가난한 시인도 사랑스럽다
그래 이 세상에 우리가 보듬고 갈 수 없는 생生은 없는 거야
내 등을 다독이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친구가 있어서 좋고
술청까지 치고 들어오는 눈바람에도
내 슬픔의 항아리는 슬픔을 담을 틈이 없다
펄펄 애기단풍잎 같은 눈송이 내리는 날은
펑펑 송이눈 쌓이는 날은
이 세상 끝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싶은 새하얀 욕망이 있어
연탄난로에 모락모락 끓고 있는
노란 주전자의 입김만큼
내 마음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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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