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주전자와 엄마
어느 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주전자 하나씩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집으로 온 나는 어머니께 주전자를
준비해 달라고 말씀 드렸다.
어머니가 내놓으신 주전자는 군데군데
녹이 슬어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다.
“이게 깡통이지, 주전자야? 창피해서 못 가져 가!”
“준비물 안 챙겨 가면 선생님께 혼나잖니?”
“차라리 안 가져갈래. 엄마는 내 마음도 몰라!”
나는 주전자를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어머니는 허둥지둥 바닥에 떨어진 주전자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셨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태도마저 짜증이 나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내가 들고 가기
쉽게 봉지에 꼼꼼히 싸 맨 주전자를
건네주셨다.
어제 어머니께 대들었던게 죄송해서 못이긴척
주전자를 들고 학교에 갔다.
수업시간이 되었다. 나는 녹슨 주전자를
내놓기가 싫어 사물함 깊숙이
주전자를 넣어 버리고는, 깜빡하고
안 가져왔다고 했다.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학교를 마치고 주전자를 몰래
꺼내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전자 잘 썼니?”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으응…”“녹이 많이 슬었기에
철수세미로 박박 닦았지. 어제
봤을 때보다 그렇게 흉하지는 않았지?”
그제야 어젯밤 잠결에
들었던 덜컹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딸이 창피를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철수세미로 주전자를
밤새도록 닦으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손등에 철수세미에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녹을 다 닦아 주셨는데
정작 나는 부끄럽다고
그 주전자를 사물함에 처박아 두었다니….
내 방으로 황급히 들어와 봉지 안에
있던 주전자를 꺼내 보았다.
어제와는 달리 은색으로 반짝이는 주전자에
군데군데 남아 있는
철수세미 자국이 숨죽이며 흐느끼는 내게는
철없는 딸 때문에 상처받은
어머니의 마음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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